본문 바로가기
오늘 일기

나의 도서관 이야기

by 오늘, 분다 2024. 12. 20.
728x90
반응형

Pixabay로부터 입수된 Tumisu님의 이미지

 

어릴 적, 아이가 셋인데 동화책 한 권 없던 우리 집. 

읽을 거라곤 2살 터울 오빠가 쓰던 국민학교 교과서가 전부였다.

낮에는, 놀 거리도 없고 잠도 안 와서

낮잠 자는 엄마 옆에 엎드려 국어/산수/도덕책 보는 것.

그게 조기교육이 되어 버려서 국민학교 1, 2학년때는 올 수를 받았다.

 

그 이후 시집, 소설책, 수필집 한 권 읽지 않고,

교과서만 띄엄띄엄 읽으며 12년의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고교 때는, 꽤 좋았던 학교 도서관도 있었던 거 같은데

왜 가볼 생각조차 안 했는지..

대신에 학교 매점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1. P대학교 중앙도서관(1987년~)

 

그러다가 1987 학력고사를 봤고 대학에 들어갔다.

1학년때 시간은 남아돌고 기웃거리다 드나들던 곳이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에 있는 음악감상실.

 

음악감상실은 컴컴했고, 등받이가 높고 수직인 검은색 레자 소파가 있었는데

주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 주었다.

신입생 때 점심 먹고 시간 때우러 잠시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1987년 1학기 초만 해도 학교 중앙도서관은 폐가식이었다.

로비에서 대출신청서를 작성하여 사서에게 주면,

사서가 서고에 가서 책을 찾아 창구에서 전달받는 방식.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되기 전부터인가 개가식으로 바뀌었다.

도서관 서가에 있는 엄청난 양의 책들을 보고

동공이 커졌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부터 주제 문맥도 없이 막 빌려서 읽어 댔다.

화성학, 도스토예프스키, 전공서적, 과학사, 시집, 한국소설...

 

책을 빌리려면 책 맨 뒷장의 도서대출카드에

소속학과와 이름을 써서 도서관에 맡겨두어야 했다.

도서대출카드에는 "꿀벌은 꽃을 헤치지 않는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시험기간에는 대학도서관 자리 잡으러 새벽 일찍 가보기도 했으나,

그런날은 엎드려 잠만 잤고...

오히려 띄엄띄엄 메뚜기 하는 편이 나았다.

----------------------------------------------------------

 

* 5살 많은 언니가 시집 좀 끼고 다녀서

조병화, 이해인 시인의 시집이 시리즈로 집에 있었고

가족들과 대화 중에 시의 내용과 분위기를 인용하며 재미있어했다.

 

** 1980-90년대, 친구들과 만나는 서면의 장소는, 늘 '동보서적 안 00 코너'였다.

 

------------------------------------------------------------

*** 영화 "유콜잇러브"(1989)에서 소피마르소가 공부하던 도서관은 너무 멋졌다.

사람이 예뻐서 더 그랬다.

 

 

2. 경북 P공대 도서관 (1992년~ )

 

경북에 있는 P공대는 1987년에 신설된 대학교다.

내가 처음 가본 1991~2년에는 모든 것이 새것이었고 현대적이었다.

첫 방문 당시, 나는 전혜린의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라는 책을 읽은 직후였다.

전혜린이 쓴 독일의 추위와 축축함과 밤 가로등의 우울한 분위기에 빠져 있던 나는.

결심했다, 집을 떠나 한적하고 깨끗하지만 차가운 느낌의 이곳에 가기로.

 

도서관에는, 당시는 드물었던 학생용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당시 여학생 비율이 많이 낮았던 때라,

도서관 엘리베이터 안에 여학생만 타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어느 날, 나 포함 4명의 여학생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나 빼고 3명은 친구들이다.

소곤거리는 말이지만 좁은 공간에서 다 들리는데,

여학생 1 : "어머, 4명 전부 여학생이다"

여학생 2 : "(나를 흘끔 보며)니눈에 여학생으로 보이니?"

나 : '......'

 

주로 특정층 로비에 있는 논문검색용 컴퓨터를 이용하러 도서관을 많이 갔었다.

정신없는 대학원 생활에서 제일가는 휴식처는,

책 빌리는 도서관보다는 목요음악회가 열리는 대강당이었다.

 

3. K그룹 중앙연구소 도서관(1995년~)

 

지금 생각하면 좋은 회사였는데, 왜 제 발로 퇴사를 했던지.

도서관이 크지는 않았지만

친절한 사서도 있었고, 책 사달라는 대로 다 사주고, 

매월 도서를 정하고 우수 독후감상문에 상금도 주고.

(두어 번 받았다.)

 

 

4. 전북 W대 도서관 ( 2001년~ )

 

30대에 다시 사립대학을 들어가니,

비싼 등록금내고 최대한 학교를 이용하겠다는 생각도 있고 해서

도서관의 책을 무섭게 빌려 읽어 댔다. 

매달 책 많이 빌린 사람 순위를 도서관 홈페이지에 게시하였는데

언젠가 한 달에 50권 정도 빌려 교내 3위에 오른 적도 있었다.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턱대고 장르에 관계없이 읽어댔다.

그리스로마신화, 건축, 미술, 건강, 국내외 문학..

그때는 주워 읽은 것도 많아서, 교양수업 과제 정도는 분야를 넘나들며 막힘없이 써내려 갔다.

꿈같은 시절이었네.

 

5. 전북 호원대 도서관 (2005년)

 

첫째를 등에 업고, 둘째는 배안에 있던 시절.

책을 찾아 주변 대학도서관을 찾아간 곳이 전북호원대 도서관.

고맙게도 인근주민들에게 도서대출을 해주었다.

여기서 고우영의 삼국지시리즈를 독파.

줄거리 내용은 거의 생각이 안 나는데, 그림과 의성어는 생생하다.

칼로 적군의 목을 "쓰뿍~!" 하고 베는데,  피가 사방으로 튄다...

태교가 삼국지였던 둘째는 딸인데,

중학생 때 주짓수를 배웠고

지금은 복싱을 배우고 싶어 하나 얼굴 뭉개진다고 내가 말리고 있다.

 

6. 충청남도학생교육문화원도서관(2007~)

 

쌍둥이유모차 밀고 집에서 걸어서 가던 원성동 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에서 죽치고 놀았다.

빌리는 책은 늘 유아용 그림책이던 시절.

어려서부터 책을 가까이하게 했건만, 둘 다 독서와 거리가 멀고 와이파이가 가깝다...

 

 

7. 캐나다 핼리팩스 도서관(2016~)

 

영어를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등록한 방송통신대 영어영문학과.

배운 건 기억이 안 나는데, 영어발음은 사춘기이전에 완성된다는 말에 꽂혔다.

아이들 아직 초등학생이고,

나도 집에서 하교하는 아이들 간식 준비해서 맞이하는 엄마를 해보기 위해

하던 일을 딱 접고 짐 싸서 날아간 곳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

1년간 살 동네는 학교/도서관/체육관이 가까워야 했다.

아이들은 Park West School에 다녔고, Keshen Goodman Public Library 가서 읽고 빌렸다.

도서관에서 단계별 영어회화, 다양한 취미 활동(뜨개 등)이 있었으나

극 I인 나는 시작했다가 곧 그만두거나 활동 근처에 가지는 않고 책만 읽었다.

지금 같았으면 뜨개방에 합류했을 텐데...

이때부터 뇌/정신/유전/신경/영혼/종교/생로병사와 그 이전과 이후/아바타/명리학/우주에 관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핼리팩스도서증 하나만 있으면 시내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고 전자책도 이용할 수 있다.

 

 

8. 부산금정도서관과 시민도서관, 작은 도서관

 

집에서 가까워서 대학시절 자격증 시험준비하느라고 다니던 부산 금정도서관과

도서관이 귀하던 시절의 부산시민도서관.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용하고 있다. 

 

** 요즘은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배달(시니어 딜리버리 북) 도 해주고

반납도 가까운 작은 도서관의 반납함을 이용하니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9. 전자도서관과 밀리의 서재

 

코로나 때 특히 전자도서관을 많이 이용했다.

도서관 가는 것도, 누가 보던 종이책을 만지기도 찝찝하여..

태블릿으로 전자도서관을 이용한 지 오래되는데

최근에 어쩐지 접속이 안되어 홈페이지로 들어가보니

부산전자도서관은 11월부터 연말까지 이용 불가능 하단다.

독서열풍으로 이용자가 폭증하여 예산이 조기소진됐고..

내년 1월부터 다시 개관예정.

전자책으로도 잡식성이 어김없이 작용하여

뜨개질/과학/철학/요리/인문/고전..

 

밀리의 서재는 딱 1개월 유료구독해 보았고,

통신사 고객감사 쿠폰으로 1개월씩 두세 번 본 적 있다.

의외로 전자도서관보다 손이 안 갔다.

 

 

10. 앞으로..

 

이사 온 지 오래인데 이것저것 정신 팔려 전자책만 근근이 보고 있다.

최근에는 주로 고전으로 논어/수상록..

어릴 적 감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방면에 걸친 종합과학예술인이 되고 싶었으나 짝퉁도 안 되겠고.

이제야 본 '괴테'처럼 살기는 이미 늦었고.

 

난중일기를 읽고 고생하신 이순신 장군님께 정성 다해 따뜻한 밥 한 끼 해드리고 싶었던 마음,

바쁜 와중에 이렇게 과학적이고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님께 감사했던 마음을 떠 올린다.

 

활자만 보면 환장하는 나는 기대한다.

이 도시의 도서관시스템과 기관 도서관들을 온오프로 이용하는 날이 내년에는 있기를..

 

 

 

 

 

 

 

728x90
반응형